2021년 8월 11일 수요저녁예배"더 나은 생명의 법"

에스더강해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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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생명의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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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에스더 8장의 말씀으로 근거로 “더 나은 생명의 법”이란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그 동안 에스더 말씀을 살펴보면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언급되진 않았지만 선명하게 드러나는 하나님의 섭리를 보게 됩니다. 다시 말해서 익명으로 일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발견합니다.
또 하나 특징은 이 하나님의 일하심이 놀라운 반전과 역전을 이루시는 것을 봅니다. 그동안 우연한 사건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여주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백성들을 굽여 살피시고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유다인의 악한 대적 하만이 지난 에스더 7장에 보니깐 완전히 몰락합니다. 심지어 모르드개를 달려고 준비 한 높은 장대에 오히려 자신이 매달려버리는 반전의 역사를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주셨던 하나님의 메시지는 우리가 겸손히 믿음을 가지고 기도할 때 일하시는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반면에 악하고 교만한 자들을 물리치시는 하나님의 심판을 보게 됩니다.
이제 오늘 본문 에스더 8장의 말씀을 봅니다. 에스더 8장의 핵심은 하나님의 약속과 성취에 관한 메시지 입니다.
세 부분으로 나눠 볼텐데 첫째는 본문 1-2절입니다. 에스더와 모르드개가 하만과의 싸움에서 승리를 쟁취하는 내용입니다. 둘째는 3절부터 8절까지인데 왕이 에스더의 호소를 들어주는 내용입니다. 마지막 9절부터 17절은 새로운 왕의 칙령에 대한 결과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순서대로 보겠습니다. 먼저 1절에 보면 “유다인의 대적 하만”이라고 말합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하만이 아각 사람이라는 겁니다. 아각이라는 것이 아말렉 족속의 왕가를 뜻합니다. 이 아말렉은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을 공격했던 민족입니다. 이 민족에 대하여 하나님이 약속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출애굽기 17장에 보면 이스라엘과 아말렉이 전투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출애굽기 17장 마지막절 16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르되 여호와께서 맹세하시기를 여호와가 아말렉과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 하셨다 하였더라
“아말렉과 대대로 싸우리라”라고 합니다. 누가요? 바로 여호와 하나님!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시는 여호와 하니님께서 친히 대대로 싸우시겠다고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그리고 신명기 25장 17절부터 19절을 보겠습니다.
17 너희는 애굽에서 나오는 길에 아말렉이 네게 행한 일을 기억하라
18 곧 그들이 너를 길에서 만나 네가 피곤할 때에 네 뒤에 떨어진 약한 자들을 쳤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였느니라
19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어 차지하게 하시는 땅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사방에
있는 모든 적군으로부터 네게 안식을 주실 때에 너는 천하에서 아말렉에 대한 기억을 지워버리라 너는 잊지
말지니라
하나님이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키시면서 약속하셨습니다. 여호와가 대대로 아말렉과 싸울 것이고, 훗날에 아말렉에 대한 기억이 없어질 만큼 완전한 승리를 주시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약속을 하시고 그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시는 분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약속을 받은 우리입니다. 우리의 연약함은 언제나 이 약속을 잊어버리는데 있습니다. 곧잘 하나님의 약속을 잊어버리곤 합니다.
사울왕이 그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사무엘상 15장에 보면 하나님은 사울왕을 통하여 아말렉 족속을 완전히 멸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런데 사울왕은 아말렉과 전쟁에서 하나님이 아멜렉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라고 했을 때 순종하지 못했습니다. 재물에 눈이 멀어서 완전히 진멸하지 못하고 불순종을 남겼습니다.
즉, 사울 왕 때 진멸되지 않았던 아말렉이 지금 이 에스더 시대까지 남아있던 겁니다. 그러나 여전히 하나님은 아말렉에 대한 약속의 말씀을 기억하고 계셨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위로 소망입니다. 우리도 사울처럼 하나님의 약속을 망각하고 살 때가 있습니다. 약속이 잊어버리고 어리석음과 불순종을 반복할 때가 있습니다. 약속을 잊어버린 우리 모습만 보면 소망이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속을 끝까지 붙들고 계시는 하나님이 있기 때문에 우리 삶에 소망이 있는 겁니다.
그러므로 이거 하나만 기억하면 됩니다. 하나님 말씀을 붙들면 최후 승리 얻는다. 다른 것 붙들어봐야 잠깐이다. 오직 말씀 붙드는 것이 우리 인생에 가장 큰 복이란 사실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다시 본문 1-2절을 보겠습니다. 이제 점진적으로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됨을 봅니다. 1절을 보니깐 아하수에로 왕이 하만을 죽이고 그 하만의 모든 재산을 에스더에게 줬다고 합니다. 이것을 보면서 그동안 에스더에게 했던 말이 완전 허풍은 아니구나 라고 생각됩니다.
아하수에로 왕이 에스더에게 늘 말 버릇처럼 내 나라의 절반이라도 줄께 라고 했습니다. 근데 하만의 전재산을 에스더에게 줬는데 하만의 전 재산이 얼마나 되는지는 정확히 나오지 않아서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하나 유추할 수 있는 것은 전에 하만이 악한 계략을 세우고 아하수에로 왕에게 줬던 뇌물의 액수를 우리가 압니다.
은 1만 달란트였습니다. 은 1만 달란트는 페르시아 제국이 거두는 1년치 세금의 2/3 입니다. 그러니깐 이정도를 뇌물로 줄 정도 재력이면 사실 하만이 엄청난 부자라는 건데 그것을 에스더에게 줍니다.
그 뿐만 아니라 2절에 보면 하만이 페르시아의 제 2인자라는 권위의 상징으로 왕의 인장반지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것을 모르드개에 주었습니다. 하만은 몰락하여 죽임을 당하고, 모르드개는 페르시아 제국의 2인자로 높임을 받습니다.
이로써 모르드개와 하만의 전쟁은 모르르개의 승리로 결말이 났습니다. 그런데 아직 남은 문제가 있습니다. 본문 3절부터 8절에 보면 여전히 에스더는 아하수에로 왕에게 다시 간청하는 장면입니다.
본문 3절입니다. “에스더가 다시 왕 앞에서 말씀하며 왕의 발 아래 엎드려 아각 사람 하만이 유다인을 해하려 한 악한 꾀를 제거하기를 울며 구하니
에스더는 하만의 모든 재산을 받았고, 모르드개는 페르시아 제국의 2인자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에스더가 눈물로 왕에게 간청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아직 하만의 궤계가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3절에 보면 “아각 사람 하만이 유다인을 해하려 한 악한 꾀”라고 합니다. 이것은 에스더 3장에 보면 하만이 악한 꾀와 뇌물을 사용하여 왕의 칙령을 온 페르시아 제국에 전달한 일입니다.
‘부르’라고 불리는 제비뽑기로 한 날에 유다인을 말살하려는 칙령입니다. 왜 이것이 문제냐면 하만은 죽었다고 이 칙령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왕의 명령, 왕의 권위가 담겨있는 칙령입니다. 그 증거가 왕의 인장반지이고, 그것 때문에 여전히 효력이 남아있습니다.
그래서 에스더가 다시 간청합니다. 본문 5절 보겠습니다. “이르되 왕이 만일 즐거워하시며 내가 왕의 목전에 은혜를 입었고 또 왕이 이 일을 좋게 여기시며 나를 좋게 보실진대 조서를 내리사 아각 사람 함므다다의 아들 하만이 왕의 각 지방에 있는 유다인을 진멸하려고 꾀하고 쓴 조서를 철회하소서
에스더가 간절히 요청합니다. 제발 조서를 철회해주세요. 왕의 칙령 때문에 우리 민족이 다 죽게 되었습니다. 라고 눈물로 호소합니다.
근데 에스더도 페르시아 제국에 법치에 대해서는 잘 몰랐던 것 같습니다. 마냥 울고 간청한다고 해서 왕의 칙령을 손바닥 뒤집듯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본문 8절 후반부에 보니깐 “왕의 이름으로 쓰고 왕의 반지로 인친 조서는 누구든지 철회할 수 없음이니라”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안된다는 겁니다. 자신이 왕이지만 왕의 반지로 인친 조서는 결코 취소 할 수 없다는 겁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유다인들에게 더 이상 소망이 없어보입니다. 왕의 조서의 내용대로 결국 유다인은 죽을 수 밖에 없는 운명입니다. 이렇게 막막한 상황 가운데 하나님은 피할 길을 내시는 분입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3절입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하나님의 편에 선 믿음의 백성들에게는 언제나 피할 길이 나타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입니다. 에스더에 간청에 아하수에로 왕은 그렇게 할 수 없다고 했지만 사실 본문 7절과 8절 전체를 보면 피할 길이 보입니다.
아하수에로 왕이 왕후 에스더와 유다인 모르드개에게 이르되 하만이 유다인을 살해하려 하므로 나무에 매달렸고 내가 그 집을 에스더에게 주었으니 너희는 왕의 명의로 유다인에게 조서를 뜻대로 쓰고 왕의 반지로 인을 칠지어다 왕의 이름을 쓰고 왕의 반지로 인친 조서는 누구든지 철회할 수 없음이니라 하니라
하나님이 아하수에로 왕을 통하여 피할 길을 내십니다. 8절 전반부를 다시 주목해서 봅시다. “너희는 왕의 명의로 유다인에게 조서를 뜻대로 쓰고 왕의 반지로 인을 칠지어다” 지금 왕의 인장 반지 누구에게 있습니까? 모르드개에게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하만이 만든 조서보다 더 나은 법을 만들면 될 것 아니냐? 너희에게 있는 그 인장반지가 권위와 효력이 있다. 기존에 조서를 뒤엎을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만들어봐라 이렇게 아하수에로 왕이 말하자 드디어 역전의 길, 새로운 살 길이 열렸습니다.
하만이 만들었던 죽음의 법을 이길 생명의 법을 만들게 된 것입니다. 11절과 12절 보겠습니다. “조서에는 왕이 여러 고을에 있는 유다인에게 허락하여 그들이 함께 모여 스스로 생명을 보호하여 각 지방의 백성 중 세력을 가지고 그들을 치려하는 자들과 그들의 처자를 죽이고 도륙하고 진멸하고 그 재산을 탈취하게 하되 아하수에로 왕의 각 지방에서 아달월 곧 십이월 십삼일 하루 동안에 하게 하였고
새로운 조서의 내용을 보니깐 유다인을 진멸하려 했던 그날에 오히려 유다인들이 함께 모여서 스스로 생명을 보호할 것과, 그들을 대적하러 나오는 자들을 도륙하고 진멸해도 된다는 법입니다. 원래 살인은 함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닌데 그 날 하루만큼 허락하고 여기에 대해서는 죄를 묻지 않는다.
그러니깐 이 조서를 받는 대적들이 감히 유다인들을 칠 수 있겠습니까? 이제는 오히려 대적들이 공포에 빠질 뿐입니다. 그래서 하만의 죽음의 법이 물러가고 모르드개가 세운 생명의 법이 오히려 강성하게 역사하는 겁니다.
이 부분이 신학적으로도 중요한 통찰력을 주는 대목입니다. 이것이 신약으로 넘어가면 율법과 복음의 관계에서도 비슷한 개념을 볼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5장 17절에 보면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전하는 복음이 율법을 폐하는 것이 아니다. 율법은 율법대로 그 기능과 힘이 역사한다. 그런데 예수님이 하신 일은 이 율법의 한계를 뛰어넘는 더 나은 생명의 법을 주셨다는 겁니다.
율법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말씀입니다. 근데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죽는다. 영벌에 처한다. 그런데 문제는 율법을 완전히 지켜서 영생을 누릴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겁니다.
로마서 6장 21절에서 23절을 보겠습니다.
21 너희가 그 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냐 이제는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하나니 이는 그 마지막이 사망임이라 22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
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율법의 말씀을 우리에게 계속 적용하다보면 그 마지막은 사망이라는 겁니다. 왜냐면 어느 누구도 율법의 말씀에 완전한 순종을 이루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22절에 보면 반전이 있는데 죄에 대한 해방과 영생을 얻을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로마서 6장 23절에 보니깐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라고 합니다.
죄로 인하여 죽을 수 밖에 없는 우리 모든 사람들의 일반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히브리서 9장 27절에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삶은 죽음의 법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로마서 6장 23절에 말씀은 그 죽음의 법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선물이 있다고 합니다.
바로 그것이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성령의 법이고 예수님의 법입니다. 이것을 요약하면 “더 나은 생명의 법”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겁니다. 우리가 이것을 복음이라고 말합니다. 죽이는 법이 아닌 살리는 법입니다.
이 살리는 법, 더 나은 생명의 법이 페르시아 제국에 다 반포되었습니다. 그 결과가 본문 15-17절인데 본문 17절을 보겠습니다. “왕의 어명이 이르는 각 지방, 각 읍에서 유다인들이 즐기고 기뻐하여 잔치를 베풀고 그 날을 명절로 삼으니 본토 백성이 유다인을 두려워하여 유다인 되는 자가 많더라
예전에 죽음의 법이 페르시아 땅에 반포되었을 때 반응을 기억하십니까? 에스더 4장 3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왕의 명령과 조서가 각 지방에 이르매 유다인이 크게 애통하여 금식하며 울며 부르짖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재에 누운 자가 무수하더라
똑같은 왕의 조서, 왕의 어명이지만 죽음의 법이 선포되었을 때는 아무런 소망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는 더 나은 생명의 법을 선포하시므로 믿음의 백성들에게 기쁨과 소망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 입니다. 삶을 살아가다보면 죽음의 법이 우릴 지배하는 것 같아 보입니다. 삶을 에워싸고 있는 수많은 인생의 문제, 육신의 질고 등이 우릴 낙망하게 만들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그럴 때마다 더 나은 생명의 법, 바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드시길 바랍니다. 약속하신 것을 결코 잊지 아니하시고 신실하게 지키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부디 우리 광주중앙교회 모든 성도들이 약속의 말씀 붙들고 최후 승리를 누리는 복된 인생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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